여기는 보스턴. 밤새 내린 눈 위에 아침 햇살이 내려앉아 온 세상이 순백색으로 눈부시다. 한국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던데…. 역시 눈이 와야 새해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지금 여기, 바깥은 영하 7도, 바람까지 쌩쌩 불어 몹시 춥지만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를 마시며 창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마음속의 히터가 켜진 것처럼 온몸이 따뜻하고 느긋해진다. 아, 이런 기분 얼마 만일까. 며칠 전까지 학기말 시험을 치르느라 동동거리던 게 아득히 먼 옛날 같다. 그러는 동안 한 해가 훌쩍 넘어가고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경인년, 호랑이해라지?

지난해 9월, 나는 다시 학생이 돼 보스턴 터프츠대 플래처스쿨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과정 (Master of Arts in Humanitarian Assiatance)을 밟고 있다. 유학을 가겠다니까 멀쩡하게 다니던 구호단체는 왜 그만두며 공부는 다 때가 있는데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쉰이 넘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 하면, 이게 좀 더 쓸모 있는 구호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공부이며 지금이 이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9년간 구호의 최전선에 있다 보니 수백만 명의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는 구호정책이 현장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번번이 도대체 이런 정책은 누가 만드는 거냐며 길길이 뛰었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현장사정을 충분히 반영한 좋은 정책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론공부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 최소한 20년간은 이 일을 계속할 테니 2년 정도의 투자는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 학교는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나도 지원서를 내놓고 떨어질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올해 이 과정에 들어온 학생은 모두 7명. 국적도 다 다르고 일하는 분야도 다르지만 9년이라는 내 연차가 가장 짧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나처럼 어떻게 하면 현장과 정책의 괴리를 좁혀볼까 고민해왔다는 사실에 무한한 동지애를 느낀다. 또한 담당 교수님들은 1년에 반은 현장에서, 반은 학교에서 일하면서 현장과 학계와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충실한 다리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됐으면 하고 늘 꿈꾸던 롤 모델을 여기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

유학은 99% 엉덩이와의 싸움이라는 말은 누구의 명언인가? 절대적인 공부시간을 확보하려면 진득하니 앉아 있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첫 수업시작 시간인 오전 8시 15분부터 새벽 한시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밤늦게 집에 가는 게 무서웠는데 나 같은 학생을 위해 에스코트 서비스가 생겨서 매일 학교 경찰이 집까지 데려다 준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서 돌아와 다음날 첫 수업에 읽어가야 할 네 권의 논문 중 한 권의 서론과 결론만이라도 읽고 자야지 생각하고 새벽 두 시에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인도적 지원에서의 중국의 역할에 관한 내용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밤을 꼬박 새워 다른 논문도 다 읽고 나니 담당교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까가 몹시 궁금했다. 다음 날 아침, 빨리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에 잰걸음으로 걷다가 박자가 안 맞았는지 발이 꼬여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러는 내가 웃겨서 한참을 큰소리로 웃었다.

이렇게 있는 힘을 다해도 늦게 하는 공부가 쉽다면 거짓말일거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이해력과 학구열은 높을지언정 기억력·순발력·체력 등은 현저히 떨어진다. 제일 힘들었던 과목은 국제인권법. 반 학생 70명 여 명 중 20명 이상이 변호사거나 법률 관련 일을 해온 사람들이라 수업수준이 매우 높았다. 법에 법자도 몰랐던 나로서는 학기 내내 쩔쩔 맬 수밖에. 이 과목의 기말고사는 그 동안 배운 것을 총동원해 어떤 사안에 대한 법률고문 형식으로 8시간 동안 1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거였다. 오픈 북인데다 배운 내용을 몇 주일에 걸쳐 잘 정리는 했지만 단 한번도 8시간 만에, 그것도 영어로 10페이지나 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나는 잔뜩 쫄았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더운 교실 안에서도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두려웠던 그 일을 그날 해냈다. 답안지를 내고 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고 당당하던지. 내 스스로 그렇게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적은 근래에 없었다. 유학 와서 보낸 가장 고통스러웠던 8시간이었지만, 쑥 크는 게 확연히 느껴졌던 짜릿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내가 크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과연 내가 어디까지 클 수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고 잠재력이 풍부할지 모른다고. 그러니 섣불리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해보지도 않고 자기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내 경험상 해보는 데까지가 자기 한계다. 이제 내 영어 글쓰기의 한계는 8시간에 열 페이지다. 이 한계의 지평을 계속 넓히고 싶다. 그러려면 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려워도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올해는 호랑이해. 올 한 해에는 호보(虎步), 우리 모두 당당한 호랑이의 걸음을 걸으면서 호시탐탐(虎視耽耽), 호랑이 같은 눈으로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꽉, 잡았으면 좋겠다. 1년 후에 우리가 얼마나 커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지 않은가? 아, 기대된다!

- 한비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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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쁜 기억력에 도움되라고 만들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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