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7 11:22 from 결혼
대부분의 여자들(특히 인문女)에게 '이상형을 말해보라'고 하면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많이 꼽는다.

함께 영화를 보고난 후 그 영화의 플롯과 앵글, 미장센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의 아티스트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청담동과 압구정 지리를 빠삭하게 알고, 내가 감동할 만한 멋진 레스토랑으로 날 데려가줄 만한 사람
을 찾아 헤맨다.

나도 그랬다.
대학 때는 씨네큐브, 하이퍼텍 나다, 스폰지 하우스를 전전하며
개봉하는 대부분의 예술 영화를 섭렵하고 내가 모르는 외국 감독 이름을 줄줄 외는 '그'가 좋았고,  
리빙잡지 에디터를 하면서는 예쁜 공간 맛있는 음식에 폭 빠져서
'엣지 있는' 문화 취향을 가지고 있는 '그'가 좋았다.

그런데 막상 취향의 교집합이 얄팍하기 그지없는, 나와 전혀 다른 문화권의 공대생과 결혼 후 2달 정도를 살아보니
결론적으로 부부간의 전문 분야는 다른 것이 더 났다는 중간 결론을 얻었다.

예로부터 '나보다 잘난 남자'에 반하는 습성을 가졌던 나는 뭐든지 내가 모르는 것에 빠삭한 오빠들에게 홀딱 반하곤 했다.
대부분 비슷한 전공, 직업, 취향을 가졌으나, 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그와의 데이트는
그의 빛나는 감수성과 지식에 대한 존경의 눈길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내 경험과 지식이 조금씩 쌓여갈 수록 그의 바닥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고...
그의 논리적 오류나 무지가 탄로나는 순간, 그에 대한 존경심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 무너진 존경심 위에는 결국 '사람 됨됨이'와 '일상의 매너'가 남는데,
센서티브하기 그지 없는 문화男은 대부분 이마저도 얄팍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찬란한 이별로 직행.

그러나, 공대생은 절~대 그런 염려가 없다.
평생동안 내가 전혀 알아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한 전문용어와 숫자, 공식과 씨름하는 그는
영원히 내가 넘을 수 없는 산이며, 존경의 대상인 것이다.
"이 공식에 얘를 대입해서...알파를 베타해서 감마를 취하면...이 그래프를 이렇게 변환할 수... (*(^&&%$^$^**.....있어. 신기하지 않아?"
신나서 본인이 알아낸 연구 성과를 얘기해주는 그에게 그저
"우와, 진짜 신기하다~ 최고의 이론이야! 역시 오빠는 천재인가봐~"
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서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늘 상대방의 일에 신기해할 수 있고,
잘 몰라서라도 칭찬해줄 수 밖에 없는
행복한 관계가 바로 공대男과 인문女의 결합인 것이다.

무지는 경외를 낳고, 곧 부부간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나무아미타아불... 관세음보살...




출처 : http://yang82.tistory.com/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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